▲ 해리스 부통령-트럼프 전 대통령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했던가요?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80대 현직 대통령과 70대 후반 전직 대통령의 비호감 대결이었던 미국 대선이 바이든 후보 사퇴 이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박진감 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부통령 임기 내내, 별다른 성과나 인지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던 해리스의 급부상은 극적이기까지 합니다. 바이든 사퇴 하루 만에 후보 자리를 굳힌 해리스는 이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격차를 급격히 좁히는 모습입니다. 심지어 일부 조사에서는 비록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트럼프를 앞서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공영방송인 NPR과 PBS가 최근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등록유권자 1,51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양자 대결 시 해리스 51%, 트럼프 48%로 해리스가 3%p 앞서는 걸로 나왔습니다. 오차범위가 ±3.4%p로 6.8%p 이상 차이가 나지 않지 않으면 통계학적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지만 경향성 정도는 참고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같은 매체가 지난달 22일 발표한 조사에선 트럼프 47%, 해리스 45%로 트럼프가 2%p 앞섰습니다.

해리스 지지율 급등? '돌풍'이라 보기 어려운 이유


불과 2달 전까지만 해도 해리스에 대한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폴리티코 의뢰로 5월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 대선 출마 시 승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4%만이 '그럴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답은 57%에 달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젠 트럼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습니다. 해리스의 돌풍이라고 봐야할까요? 전문가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51 대 49의 싸움이 고착화된 미국의 선거 구도를 고려하면 '돌풍'이란 표현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사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전 해리스'와 '후보가 된 해리스'는 정치적 위상이란 측면에서 비교 불가입니다. 일단 후보가 됐다면 결격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민주당 지지층을 업고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해리스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라는 극적 효과까지 누렸습니다. 정리하자면, 양당제가 굳어진 미국에서 굳이 해리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민주당 후보가 됐다면 트럼프와 박빙 승부로 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지율 상승은 해리스 개인의 돌풍이라기 보다는 민주당 후보로서의 기본값을 회복하는 거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듯 합니다.

트럼프 진영에서 주장한 이른바 '허니문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막 등장한 새 후보의 경우 소속 정당의 열광적 지지 속에 유권자들 사이에서 막연한 관심과 기대를 받게 됩니다. 그에 반해 크게 알려진 게 없다 보니 비판적 요인은 제한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실적과 발언 등이 공개되고 언론들의 검증도 시작되면서 지지율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 아직 검증보다는 관심단계라고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해리스 vs 트럼프 누가 이길까…현지 분위기


그렇다면 해리스와 트럼프의 대결을 보는 미국 현지 분위기는 어떨까요? 어느 누구도 단언하지 못할 만큼 예측 불가입니다만, 적어도 당장 오늘 투표한다면 트럼프가 이길 거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입니다. 특히나 트럼프가 저격 당한 직후,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제 대선은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바이든 사퇴로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다시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적어도 제가 만나 본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트럼프가 유리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는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힐러리 승리를 예측했던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당황한 조사기관들도 설문 방식을 수정하는 등 보완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전처럼 큰 오차는 없을 거란 설명입니다만 여론조사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합니다. 먼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젊은 유권자들의 경우 여론조사 전화를 잘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주당 지지율이 저평가 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반면, 공화당 지지층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노동자나 농민들 가운데 지방 거주자들의 경우 여론조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선거 미칠 파급력은 일부나마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젊은 유권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투표율 또한 높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투표 독려에 힘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면 지방 거주 백인 공화당 지지층의 경우 높은 충성도를 보입니다. 아이오와 공화당 코커스 당시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 속에서도 투표에 나섰던 사람들도 이런 부류였습니다. 양측 모두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 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쪽은 공화당 쪽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해리스가 이긴다면? 트럼프 패배가 불러올 혼란


트럼프 저격 직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한마디로 축제였습니다. 대의원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트럼프는 당의 대선 후보를 넘어 이미 대통령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현장 취재 동안 만난 사람들은 누구도 트럼프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사퇴 전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간발의 차로 총탄을 피해 살아난 트럼프가 '신의 뜻'을 언급했을 때 지지자들에게는 종교적 확신처럼 들리는 듯 보였습니다.

이후 민주당 내분이 빠르게 정리되면서 대선 결과는 다시 알 수 없게 됐습니다. 다만 만약 해리스가 트럼프를 꺾고 승리할 경우 미국이 겪게 될 혼란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당대회장에서 제가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명백한 패배였던 2020년 대선조차 아직까지 도둑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에게 패배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리스나 트럼프 모두 부통령 후보로 외연 확장보다는 각자의 색깔을 보다 분명히 하는 충성파를 택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대선도 진보 대 보수, 극과 극의 대결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해리스든 트럼프든 어느 한 쪽이 승리하겠지만 선거 뒤 미국 사회 분열은 한층 가속화할 위험이 커진 셈입니다.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국과 안보에서부터 경제, 사회까지 어느 것 하나 얽히지 않는 게 없다 보니 미 대선을 마냥 '강 건너 불구경'처럼 바라보기 어려운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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